기아자동차, IMF, 그리고 故최진실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8.10.0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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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진실의 영정.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세계증시가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폭등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연 10%를 넘었다. 마치 시간이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1997년말~98년 초 그 혹독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시절, 월급마저 안 나왔던 그 참혹했던 고통의 추억.

그때 기아자동차는 한국경제 위기의 한 축이었다. 그해 우여곡절 끝에 부도난 기아자동차는 그야말로 국가경제의 '태풍의 눈'이었다. 오죽했으면 '기아 살리기=한국경제 살리기'가 공공연하게 언론에, 사람 입에 오르내렸을까.


이때 한 유명스타가 백기사처럼 등장했다. 부도 난 기아자동차를 위해 CF에 무료로 출연한 것. '까짓 무료로 출연한 것이 무슨 대수야?'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대수가 맞다. 그 스타는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CF 모델이었고, CF 1편 출연료는 당시 돈으로 3억원을 호가했으니까. 바로 故 최진실이다.

경트럭 '타우너' 광고모델로 기아와 인연을 맺었던 최진실은 기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다, 97년 11월 진념 당시 기아 회장에게 이러한 '선의'를 밝혔다. CF 내용은 '기아가 살아났다. 안심하고 기아차를 사셔도 된다'는 것. 최진실은 이후 기아 신차 발표회 때도 기꺼이 참석했다.

팬들은 이런 최진실의 모습을 보고 흐믓했고 감동했다. 서슬퍼런 경제위기감에, 쪼그라든 월급통장에 돈 한 푼이 아쉬었던 그때, CF속 최진실의 믿음직하고 환한 표정에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한마디씩 했다. "역시 짠순이가 돈 쓸 줄 아네"라고. 기아차는 이런 최진실에 대한 보답으로 미니밴 카니발을 선물했다.


최진실은 이후 98년 11월,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썼다.

"기아자동차를 돕는 차원에서 무료로 CF에 출연한 뒤부터는 가끔 내가 먼저 CF 개런티를 낮춰 제안하기도 한다...나는 원래 '짠순이'로 연예계에서 소문이 파다한 편이다. IMF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는 덜 쓰는 것이다. 나는 한국통신CF에서도 '대한민국 짠순이에서 이제 세계적인 짠순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나처럼 짠순이가 되면 소비가 위축돼 경기가 살아나기 어렵다고 하니 이제 꼭 써야 할 곳에는 써 볼 생각이다."

그랬다. 최진실은 이런 사람이었다. 어려운 사람, 그냥은 넘어가지 못하고 돈 쓸 때는 아끼지 않고 쓸 줄 아는. 최근 고인의 장례절차를 끝낸 고인의 소속사 대표가 자신의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생전 고인이 보낸 메시지다. "대표님, 힘 내세요~~. 제가 있잖아요. 돈 많이 벌어 꼭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대표는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고, 기자는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장밋빛인생'에서 허름한 셔츠 차림의 푸석한 맹순이 얼굴도 오버랩됐다. 누이같고 동생같던 그녀가 지금 진정 저 세상에 있는 게 맞나, 혼란스럽기도 했다.

기아차는 카니발 선물이라도 했지, 사람들은 이런 그녀에게 무엇을 선물했나. 우리들은, 볼품없는 우리들은,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던 적 없는 우리들은 과연 무엇으로 보답했나. 말도 안 되는 온갖 추접한 사채설과 악플과 손가락질! 도대체가 최진실이 이런 천박하고 몰상식한 대접을 받을, 그런 배우이자 스타였나.

10년 전 그 CF가 그립다. 생전의 그녀가 몹시 그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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