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의빈성씨, 정조실록에는 어떻게 기록됐나

박종진 기자 / 입력 : 2008.04.17 14:36 / 조회 : 118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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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의빈 성씨의 죽음 부분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MBC드라마 '이산'이 인기를 끌면서 송연(한지민 분)의 실제 모델인 '의빈 성씨'(宜嬪 成氏)에 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극중에서 정조(이서진 분)의 사랑을 받으며 효의왕후(박은혜 분)와 묘한 관계를 연출하는 송연은 곧 후궁이 될 예정이다.

드라마 속 송연과 달리 실제 정조의 후궁이었던 의빈 성씨는 도화서 화원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 어렸을 때 궁에 들어와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의 처소에서 나인으로 일하다 성은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성씨가 문효세자를 낳자 정조실록은 "궁인(宮人) 성씨(成氏)가 태중(胎中)이더니 오늘 새벽에 분만하였다"(1782년9월)고 기록한다. 정조는 "머지않아 이 나라의 경사가 계속 이어지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으므로 더욱더 기대가 커진다"며 기뻐했다.

같은 해 12월 성씨는 내명부 정3품 소용(昭容)의 지위를 얻는다. 정조는 이듬해인 1783년(정조7년)에 의빈의 칭호를 내렸다.

그러나 의빈 성씨에게 불행이 시작됐다. 1784년(정조8년)에 낳은 딸이 첫돌을 넘기기 전에 죽고 만다. 효의왕후에게 후사가 없어 문효세자로 책봉된 의빈 성씨의 아들도 1786년(정조10년) 5살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조실록엔 문효세자를 잃은 아버지 정조의 슬픔이 묻어난다. 정조22권에는 "이날 새벽에 발인을 하였는데 임금이 홍화문(弘化門) 밖에 나와서 곡하고 전별하였다…영여가 도성 밖에서 떠나기를 기다렸다. 임금이 흑립(黑笠)과 백포 철리(白布帖裏)를 다시 입고 묘소에 나가…일을 지켜보았다. 장사가 끝나자, 임금이 친히 신주(神主)를 쓰고 초우제(初虞祭)를 지내고 그대로 하룻밤을 지냈다"고 기록돼 있다.

자식 잃은 슬픔이 어미인 의빈 성씨의 건강도 해쳤을까. 문효세자를 장사 지낸 지 2달도 채 되지 않아 3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의빈 성씨는 그만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실록에 따르면 처음 의빈이 임신했을 때 신하가 호산청(護産廳, 후궁의 출산을 도와주는 기관)을 설치하자고 청하자 정조가 출산할 달을 기다려 하라고 명했던 만큼 건강상태가 원래 안 좋았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임금이 말하기를 "병이 이상하더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부터 국사를 의탁할 데가 더욱 없게 되었다"고 해 정조의 의혹과 상실감을 드러냈다.

실록은 또 "이는 대체로 의빈의 병 증세가 심상치 않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무슨 빌미가 있는가 의심하였다"고 전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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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BC제공


역사 속에 의빈 성씨의 '의심스런' 죽음이 드라마에도 반영될 지는 미지수다.

'이산' 제작진은 "송연의 죽음에 대해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며 "병사나 독살, 음모론 등 여러 가능성을 놓고 계속 회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MBC '이산'의 시청자게시판에는 예고된 송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그 원인에 대해 궁금해 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76부작 '이산'은 61회까지 방영됐고 오는 28일 방송분에는 정조와 송연의 합궁신이 연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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