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희 감독 "'디어 평양'은 이데올로기 아닌 가족영화"

부산=전형화 기자 / 입력 : 2006.10.19 12:42 / 조회 : 1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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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가 북핵에 관해서는 어떤 코멘트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해운대 앞에서 만났건만 재일 교포 2세 양영희 감독(41)의 표정은 사뭇 복잡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오빠가 모두 평양에 살고 있을 뿐더러 오사카에 사는 부모님의 국적 역시 북한이기 때문이다.

양영희씨는 71년 북한의 귀국사업에 따라 평양으로 건너가 30년이 넘도록 살고 있는 세 오빠와 조총련 활동을 열심히 하며 '수령님'에 이어 '장군님'에게 충성을 바치는 아버지, 그리고 평생 묵묵히 남편을 내조하는 어머니를 10년 동안 다큐멘터리로 촬영했다.

그 결과물인 '디어 평양'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선보인 뒤 올 해 베를린영화제 넷팩상과 미국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할 정도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평양에 사는 조카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 '선아 또 하나의 나'(가제)가 부산국제영화제가 해외 동포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원하는 펀드에 선발돼 올해 다시 부산을 찾았다.


"예전에 한국에 가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내 멋대로 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는데 아버지가 '죽이겠다'고 해서 그만 뒀죠. 뉴욕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했더니 '어떻게 내 딸이 미제의 심장부로 가려고 하냐'고 펄펄 뛰셨죠."

지금 양영희씨의 국적은 한국이다. 불과 얼마전 완벽한 여권이 나왔으니 그의 표현대로 초보 한국인이다. 하지만 그에게 국적은 별 의미가 없다. 한국인이건 북한인이건 일본인이건 그는 양영희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됐는데 아버지는 내가 한국이나 미국에 간다고 하는 게 당신과 연을 끊겠다고 하는 줄 알았대요. 나는 달라진 게 없는데. 건방진 딸이지만 일본에서 TV나 라디오에 나오니 내심 흐뭇해 하시는 것 같기도 하구요."

오는 11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디어 평양'은 그런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다만 고향이 제주도이면서도 세 아들을 중고등학교 시절 평양에 보낸 아버지와 직업도 없는 아버지에게 시집 와서 아버지가 하는 일이기에 열심히 조총련 활동을 했던 어머니를 둔 딸이기에 사적이지만 특수한 내용이 담겼다.

어머니는 손녀가 손발에 동상이 걸렸다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는 20년이 넘도록 해마다 평양에 손난로를 비롯해 각종 물품들을 바리바리 챙겨 보냈다. 알고보니 가족들 외에 평양에 살고 있는 아버지의 친지들에게도 별도로 생필품을 보냈다.

딸로서 영영희씨는 그런 아버지를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북쪽에서 들리는 흉흉한 소문도 가슴을 무겁게 했다. 평양에 진갑 잔치를 하기 위해 방문한 아버지가 "아직도 조국에 충성을 다 바치고 있지 못하다. 우리 가족들이 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하도록 키우겠다"고 했을 때는 들고 있던 홈비디오를 던지고 싶기도 했다.

"아니 누구에게 들려 주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자리에 오빠 회사 상사들이 있어서 일종의 보험을 든 게 아닐까 싶더군요."

그런 아버지가 싫어서 서른이 다되도록 양영희씨는 아버지와 밥상에도 같이 앉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아버지를 비로서 마주보게 된 것은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치우라고 역정을 내던 아버지는 점차 카메라를 통해 딸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북한을 이해하는 남한 사람과 결혼해도 돼요?" "북한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과는?" "또 미국사람과는?" 국적을 바꾸는 것조차 용납 못하던 아버지는 남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까지는 "좋아하면 할 수 없지"로 바뀌었다.

10년을 카메라로 담다보니 고집 센 황소같던 아버지도 공부하기 뉴욕에 간다는 딸의 말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할 수 없지"라고 할 만큼 달라졌다. "아무 것도 없는 나한테 시집와줘서 고맙다"고 어머니에게 말하기도 한다.

이런 내용이 '디어 평양'에는 양영희씨의 나레이션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뇌경색으로 병상에 누운 양씨의 아버지지만 한국 관객들이 '디어 평양'을 본 소감에는 무척 관심을 보였다. "아버지의 사상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런 캐릭터는 맘에 들어하더라고 했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라구요."

지난 8월 도쿄에서 처음으로 '디어 평양'이 상영됐을 때 몇몇 일본인들은 어떻게 평양 앞에 디어(DEAR)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냐고 따졌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뒤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아버지에게 평양은 이데올로기의 조국이라 아니라 가족이 있기 때문에 조국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된거죠. 나역시도 마찬가지고."

북핵 문제로 한국 못지 않게 일본도 떠들석하기에 양영희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만경호 입항이 거부돼 어머니의 물품도 평양에 보내지 못하고 있다.

"11월 '디어 평양'이 한국에 개봉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해요. 제주도에서도 이 영화를 상영했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먼 일이지만 언젠가는 북한에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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