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 ""연기라는, 가도가도 끝 없는 마수에 걸렸다"

이규창 기자 / 입력 : 2005.10.2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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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주혁이 뭇여성들의 눈에 '쇼킹 핑크색 하트'를 둥둥 띄워놓았다.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터프하고 퉁명스럽지만 속내는 따뜻한 최상현 형사 역으로 출연중인 김주혁은 '거든'체의 독특한 대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며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인기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에요. 반짝 왔다가 금방 사라져요. (인기에 연연할) 그럴 나이는 지났고, 드라마가 끝나면 다시 또 그냥 흘러가는 거니까."


본인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김주혁은 이미 '대세'로 떠올랐다. 전작 '파리의 연인'에서 톡톡 튀는 대사들로 '어록'을 양산했던 김은숙 작가가 '프라하의 연인'에서도 최상현 캐릭터에 많은 짐을 지웠지만, 김주혁은 거뜬히 소화했다.

대뜸 반말을 던지고 툴툴거리며 내뱉는 대사들이 시청자들에게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대사를 하는 당사자가 "멋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김주혁은 마치 평소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상현의 매력을 체화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달라고 주문을 받은 것은 없었고, 상현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면 어울릴까 생각해서 설정했어요. 내 성격과는 다르지만 사람이 100% 바뀐다는 건 말도 안되고, '나라면 어떨까'를 조금 가미하는 거죠. 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고, 양념을 어떻게 잘 치고 매력적으로 하느냐에 달렸죠."


'청연' '광식이 동생 광태' 등 영화의 개봉을 늦추게 된 후 출연한 드라마에서 김주혁이 '인기 대박'을 터뜨리자 한달 간격으로 개봉을 앞둔 영화사들도 흥행에 대한 기대감에 기쁜 표정이다. 그러나 정작 김주혁 본인은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다.

"1주일에 2회분을 촬영한다는 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힘들죠. 지난주는 평균 2~3시간 밖에 못 잤어요. 아직도 잠이 안 깨네.(웃음) 빨리 빨리 촬영해야 하고 시간이 부족하니까 충분한 준비를 할 여유가 없어요. 그러니 스스로 만족도는 떨어지고."

연기자의 끈을 잡기 위해 SBS 공채탤런트 시험에 응시했을 때도, "한번 해보고 못하면 자른다"는 엄포를 들으며 시작한 '세이 예스'로 영화에 첫 데뷔할 때도,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이끌었던 힘은 '스타성'이 아닌 '연기력'이었다. 물론 올해초 여읜 아버지 고 김무생의 후광 때문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직적접인 영향은 없었어요. 단지 환경이, 정서적으로 좀더 영화와 연기에 가깝고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정도겠죠. 그냥 불현듯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났어요. 기억도 안 나요, 언제인지. '한 번 해볼까?' 요만하게 생각났던 게 눈덩이처럼 커졌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선천적이라는 건 전혀 아니고. 내가 볼 때 배우는 선천적인 면이 노력하는 걸 이길 수 없어요."

'YMCA 야구단'의 차분하고 진중한 대현, '싱글즈'의 편안하면서도 센스있는 수헌, '홍반장'의 세상에 둘도 없을 것 같은 괴짜 두식, '광식이 동생 광태'의 소심한 쑥맥 광식 등 다양한 캐릭터를 거치며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김주혁, 그의 진짜 모습이 궁금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석주가 좀 비슷하겠네. 터프한 건 아니고 철없고 애교 떨고 그래요.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애교 많이 떨어요. 말투부터 달라져요. 막내기가 남아가지고."

대화가 진행될수록 장난스러운 말투가 배어나오는 걸 보면 '장난꾸러기'라는 주변의 전언이 맞는 듯 싶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만큼은 '까다롭다' 할 만큼 쉬이 대화를 풀어놓지 않아, 매니저가 사전에 양해를 구할 정도다. 그래서일까, 예전 자료를 뒤져봐도 피상적인 말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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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면 잘 하는데, 아무 준비 없이 '자 말해봐라'는 식이니까 그럼 난 '뭘 말해요?'가 되는 거죠. 농담한 건데 사실로 기사가 나가는 것도 좀 그렇고, 그래서 말 안 할라구.(웃음)"

하긴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까지 근 1년간 김주혁에 관한 소식은 연인과 아버지 등 개인사에 치중해 있었다. 정작 1년 전부터 주연으로 급부상한 연기자 김주혁을 제대로 알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 인터뷰가 '연기자 김주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자, 김주혁은 뭔가 놓고 온 것을 기억해낸 것처럼 진지하게 눈을 뜬다.

"13년 전 대학 1학년때 첫 연극을 했던 순수한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너무 힘들어요. 다시 찾으려고 노력을 해도 안돼요, 테크닉 요령 멋이 생기고. 그걸(초심) 다시 찾으면 한단계 올라가지 않을까 싶은데, 이제 100계단 중 두 계단 올라왔다는 생각 들거든요. 연극을 해서 새로운 계기를 얻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에너지를 또 얻을 테고."

대학시절 생애 첫 연극이 '연기 100계단' 중 첫 번째 계단을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면, 김주혁의 두 번째 계단은 '예술가'라는 이름의 가치를 깨달은 시기가 아닐까.

"시작은 이기적인 발상이었죠. 연기, 내가 좋아서 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고쳐먹지 안으면 연기 폭이 넓어질 수 없다고 느꼈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뭘 전달할까' '이런 작품에서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야지' 그런 마인드. 그러면 무슨 작품을 하건 어떤 예술을 하건, 관객들에게 기쁨과 슬픔을 주면 '예술가'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겠구나.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불러 달라는 건 어처구니 없는 얘기고. 아직은 미천한데, 내 꿈은 그거라는 거죠."

남들이 다 잘한다며 박수를 보낼 때조차 김주혁이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내리는 평점은 '짠돌이' 수준이다. 그가 목표로 삼은 '예술가'에 죽을 때까지 다다를 수 있을까 걱정이라는 말이 어찌 보면 엄살 같지만, 자신과 타협해야 하는 현 상황이 연기에 있어서 만큼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김주혁을 괴롭힌다.

"더 하고 싶고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극중 상현이 내 스스로도 터프하다는 틀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지고 자유롭지 못해요. 다양성을 주고 싶은 생각도 있는데, 주어진 폭이 넓지 못하니까. 10회까지 했으니까 이제 자유로와지겠죠. 사람들도 알 거고. 이제 외적인 부분보다 내적인 면을 더 그리지 않을까, 아픔이나 그런 것들. 다 섞여 있었으면 하는 거에요."

역할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던 김주혁은 '청연' 촬영하면서 몸 만들기를 시도했으나 드라마를 하면서 운동할 엄두도 못 낸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수면 부족에 감기까지 겹쳐 몸이 아우성을 쳐도, 촬영장에만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가 도는 게 김주혁이다. "스스로 내 연기를 보기가 부끄럽다"며 앓는 소리를 하지만, 그의 매력에 빠진 시청자들은 이런 그의 연기가 만족스럽다.

"배우들 중에 노력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 직업이 알고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감각이나 선천적인 끼에 의존하는 배우들은 배우라는 느낌이 얕죠. '저 정도면 됐어' 하는데 난 항상 만족 못해요. 외국의 좋은 배우들처럼 차곡차곡 쌓은 게 없기 때문에 평생을 두고 만족 못할 거에요.

당신 연기 만족해하는 배우 없을 걸요? 이만큼 오면 목표가 또 달라져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직업이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골프가 끝이 없어서 재미있다는데, 연기자 이것도 마수에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마수에 걸린 거죠. 계속 늙어서 나이가 들었을 때 조심해야 되는 게 '안주하지 말아라', 계속 도전하고 시도하는 배우가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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